마음의 풍경/일상소묘

봄, 양화소록

잎푸름 2013. 3. 22. 10:25

 

 

 

올봄 하릴없이 옥매 두 그루 심었습니다
꽃 필 때 보자는 헛된 약속 같은 것이 없는 봄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군요
내 사는 곳 근처 개울가의 복사꽃 활짝 피어 봄빛 어지러운데 당신은 잘 지내나요
나를 내내 붙들고 있는 꽃 핀 복숭아나무는 흰 나비까지 불러들입니다
당신은 잘 지냅니다
복사꽃이 지는데 당신은 잘 지냅니다 봄날이 가는데 당신은 잘 지냅니다
아슬아슬하게 잘 지냅니다
가는 봄 휘영하여 홍매 두 그루 또 심어봅니다 나의 뜰에 매화 가득하겠습니다

-
'봄, 양화소록' 조용미


지난 주 며칠, 따스함이 때 이르게 이어지는 것이 무척 즐거워 옷깃을 펼쳤더랬습니다.

그러나 꽃시샘 추위가 다가오리라 응당 봄은 그런 뒤채임 끝에 오는 것이란 마음 한 자락까지 풀어 헤친 것은 아니었답니다.

언제나이듯 봄 걸음은 진중하기만 했었으니까요.

며칠 시린 날이 이어집니다. 어제는 시린 끝에도 청명한 하늘이더니, 오늘 아침은 흐린 새침한 날씨로군요.

학부모회가 있다길래 구색을 갖추느라 걸친 양복이 오늘 찌푸린 날씨의 차가움엔 또 맞지 않습니다. 

어릴적 친구가 몹쓸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도 벌써 2주에 이르고 있네요.

한 번 가버리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이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슬픈 숙명이지만

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다시 만날 수 있는 희망 있으니

산다는 것은 그래서 살아 있다는 것은 더더욱 생이 붙잡을 수 있는 필요,충분의 의미랄까요.

 

어제 오후 햇빛 사이를 유영하다가 교정에 하늘을 이고 핀 홍매를 보았습니다.

그걸 스마트폰으로 한 컷 찍어도 보았지요.

 

책 '양화소록'은
조선 초기 문신이자 서화가였던 강희안이 손수 화초를 기르며 기록한 일종의 원예서랍니다.
풀 한 포기의 미물이라도 그 풀의 본성을 잘 살피고 키운다면 자연스레 꽃이 피어난다 하였다는데요.
그 제목에 인간사를 붙여서 적은 위 시를 봄철마다 읊조려 봅니다.

이 봄에 다시 읽어도 가슴이 짜안해집니다.

 

올해도 당신..

잘 지냅니다.
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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